한국의 직장 문화는 수십 년 동안 상명하복과 단체 중심의 조직 문화를 바탕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 회식 문화는 팀워크를 다지고 상하 관계를 정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 의미와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강제 회식’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고, MZ세대의 가치관 변화는 직장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회식이 줄어들게 된 배경과 트렌드, 워라밸의 개념과 그 중심에서 회식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그리고 회식이 직장인에게 어떤 스트레스를 주었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해보겠습니다.
회식 줄이기의 흐름과 배경
과거에는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상사의 호출은 거절할 수 없는 암묵적 규칙이었고, 회식 불참은 조직 생활 부적응이나 무성의함으로 간주되기 일쑤였습니다. ‘한잔 하자’는 말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사실상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졌고, 회식은 대부분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회식 문화가 빠르게 변화하게 된 계기는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전환점은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입니다. 2020년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집합 금지 명령 등이 시행되면서 회식은 법적으로도 불가능한 활동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회식 자제 분위기가 강제적인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직장인들은 회식이 없이도 업무 성과나 팀워크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회식의 실효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했고, 자연스럽게 ‘회식은 필수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변화의 핵심은 MZ세대의 직장 내 비중 증가입니다. MZ세대는 개인의 가치와 자율성을 중시하며,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들은 회식이 사적 시간을 침해하고, 무의미한 음주로 이어지는 비생산적인 활동이라고 판단합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건강, 취향, 종교 등 다양한 이유로 음주를 하지 않거나, 회식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 같은 태도는 이전 세대가 경험했던 ‘직장 문화’와는 확연히 다르며, 실제로 많은 신입사원들이 입사 전 회식 문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확인할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요소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입니다. 과거에는 오프라인 회식이 아니면 팀원 간의 소통이나 유대감을 쌓기 어려웠지만, 현재는 화상 회의, 메신저, 익명 피드백 툴 등 다양한 방식으로 팀워크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일부 기업은 사내 커뮤니티 플랫폼을 도입해 부서 간 교류를 장려하고 있으며, 온라인 기반으로도 충분한 업무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입증되면서 회식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인사 전략 변화도 주목할 만합니다. 최근 많은 기업들은 ‘사내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발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회식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회식비를 팀장에게 일괄 지급하지 않고, 팀원들이 직접 예산을 관리하며 참석 여부를 투표로 결정하거나, 아예 회식 자체를 없애는 제도를 시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회식을 줄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문화 전반을 변화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워라밸 중심의 문화로의 전환
회식 문화가 줄어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워라밸에 대한 인식 변화입니다. ‘워라밸’은 단순히 근무 시간 이후의 자유 시간을 보장받는 것을 넘어서, 일과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삶의 방식입니다. MZ세대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워라밸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회식을 비롯한 조직 내 여러 활동들도 이 기준에 따라 재정립되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거나, 인맥을 형성하기 위해 회식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회식이 많은 회사는 비효율적인 회사다", "업무 시간에 못한 소통을 왜 퇴근 후에 강요하느냐"는 불만이 다수 직장인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기업들도 워라밸 중심의 문화를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퇴근 시간을 철저히 준수하는 ‘PC오프제’, 정시 퇴근 후 사적 모임 금지, 점심시간 회식 등 ‘오피스 아워 내 회식’ 시스템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사내 이벤트로 대체 회식을 운영하거나, 회식 대신 소규모 팀 별 워크숍, 문화활동, 봉사활동 등 구성원의 취향을 반영한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직장인의 만족도와 몰입도를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자율성과 존중이 기반이 되는 조직 문화는 구성원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이는 곧 업무 성과와 조직 내 협력의 질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자율적인 문화’를 가진 조직은 낮은 이직률과 높은 직원 만족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으며, 장기적으로 인재 유치에도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워라밸이 단지 젊은 세대의 이슈가 아닌, 모든 직장인의 핵심 가치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혼자, 육아 중인 직원, 건강 문제를 가진 직원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워라밸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는 조직 내 문화 개선을 촉진하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회식이 직장인에게 주는 스트레스
회식이 줄어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직장인에게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이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심리적, 신체적, 관계적 부담을 동반한 회식은 많은 직장인들에게 오히려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먼저, 심리적인 스트레스입니다. 회식 자리는 단순한 음주 자리가 아니라 ‘사회적 시험대’로 여겨지곤 했습니다. 상사의 말에 맞장구를 쳐야 하고,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유머를 강요당하거나, 분위기를 깨면 조직 내 평가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압박감도 존재했습니다. 특히 젊은 직원일수록 회식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고, 이는 업무보다 더 힘든 ‘인간관계 관리’의 장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신체적인 피로감입니다. 1차, 2차, 심지어 3차까지 이어지는 회식은 저녁 시간을 모두 소모할 뿐만 아니라, 음주와 늦은 귀가로 인해 다음 날 업무 집중력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지속적인 피로는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고,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건강 악화로 연결되기까지 합니다.
셋째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침해입니다. 최근에는 음주를 하지 않거나, 개인 시간을 매우 중시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조직에서는 회식 불참이 ‘비협조적 태도’로 해석되며, 인사 평가나 팀 내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일부 직장인은 가족과의 시간, 자기 계발, 휴식 등을 희생하면서까지 회식에 참석해야 하는 현실을 ‘강제 동원’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인식한 기업들은 회식 강요를 금지하고, 회식에 대한 ‘참여 선택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문화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회식이 단지 ‘강한 유대감’의 수단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다양한 대안 회식 방안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예컨대 워크숍, 사내 요가 클래스, 카페 미팅, 비영리 봉사활동 등 구성원의 취향을 고려한 활동으로 소통을 강화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회식 자체를 없애기보다는, 그 형식을 유연하게 바꾸는 기업도 많습니다. 음식 중심의 점심 회식, 음주 없는 문화 활동 중심의 팀 모임 등은 구성원 간 소통을 유지하면서도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결론: 새로운 회식 문화, 선택이 아닌 변화의 필연
이제 회식 문화의 변화는 시대의 흐름이며,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근본적인 조직 문화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단체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강제에서 자율로, 업무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변화하는 회식 문화는 앞으로 더 많은 기업과 조직이 추구해야 할 방향입니다.
건강한 회식 문화는 구성원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고, 소통의 방식이 다양화된 환경에서 형성됩니다. 단순한 음주나 소모적 행사에서 벗어나, 진정한 공감과 배려, 그리고 자율적인 선택이 가능한 회식이야말로 현대 직장인이 원하는 모습입니다.
직장 내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고, 각자의 삶을 균형 있게 유지할 수 있는 문화는 단지 개인의 만족을 넘어서 조직 전체의 건강함을 반영합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회식 문화가 보다 많은 직장에서 실현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