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직장인들 사이에서 ‘퇴사템’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립니다. 퇴사템이란 퇴사할 때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작은 선물이나 간식을 말하며,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로 정착해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퇴사를 기념하는 행동이 아니라, 직장 내 소통 방식과 작별 인사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그리고 개인 커리어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흐름에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 글에서는 퇴사템이라는 트렌드가 왜 생겨났고, 그 안에 담긴 한국 직장문화의 단면, 퇴사의 진짜 이유, 그리고 MZ세대의 직장에 대한 철학까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직장문화의 변화와 퇴사템 트렌드의 등장
한국의 전통적인 직장문화는 집단주의, 연공서열, 상명하복 구조로 대표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직장은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의무의 공간’으로 인식되었고, 조직에 충성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습니다. 퇴사는 되도록 말 없이, 조용히, 문제없이 마무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며, 마지막 날마저 티를 내면 ‘예의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조직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인식이 퍼지면서, 퇴사를 스스로의 선택으로 여기고 당당하게 알리는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퇴사템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등장했습니다. 퇴사템은 마카롱, 음료 쿠폰, 맞춤형 메시지가 담긴 굿즈, 간식박스 등 다양하게 표현되며,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함께해서 즐거웠어요’라는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 됩니다.
이는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변화된 인간관계의 방식과 일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태도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이제 퇴사는 ‘헤어짐’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여지며, 퇴사템은 그 전환점을 서로에게 공유하고 응원하는 하나의 의식처럼 기능하고 있습니다. 퇴사템을 준비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기며 자연스럽게 작별을 나누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SNS와 콘텐츠 플랫폼의 발달로 인해 퇴사템은 더욱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퇴사템’을 검색하면 다양한 사례가 나오며, 다른 사람의 퇴사템을 참고해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선물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퇴사템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나는 이렇게 나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했다’는 자랑스러운 기록이 되기도 합니다.
직장인들이 퇴사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퇴사템의 유행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많은 직장 내 문제들이 존재합니다. 겉으로는 웃으며 퇴사템을 돌리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퇴사를 결심하게 만든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왜 퇴사할까요?
첫째는 ‘업무 과중과 스트레스’입니다. 야근이 일상화되고, 명확한 업무 분장이 없는 구조에서 직원들은 자신의 역할 이상을 수행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조직이 성장하지 않거나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는 한 사람이 두세 사람 몫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며, 이는 곧 정신적·신체적 탈진으로 이어집니다.
둘째는 ‘조직문화’입니다. 여전히 일부 조직에서는 상명하복, 불합리한 의사결정, 팀 내 소통 부족, 일방적인 평가 방식 등이 만연합니다. 수직적 관계가 남아 있는 조직에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고, 실수에 대한 피드백보다는 질책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신입이나 젊은 직원들은 이런 환경에서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껴 퇴사를 고민하게 됩니다.
셋째는 ‘커리어 성장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업무가 반복적이고, 새로운 도전 없이 하루하루를 소모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 회사에 있어도 나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들면, 퇴사는 자연스러운 선택이 됩니다. 실제로 커리어 플랫폼 리멤버의 조사에 따르면, 2030 직장인 중 60% 이상이 ‘성장 기회 부족’을 퇴사의 주요 이유로 꼽았습니다.
넷째는 ‘심리적 요인’입니다. 요즘은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직장생활이 우울증, 불안장애, 번아웃 등을 유발할 경우, 이를 참지 않고 퇴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전 세대처럼 ‘버텨야 한다’는 인식보다,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가 강해진 것입니다.
이처럼 퇴사는 단순한 변덕이나 충동적인 선택이 아닌, 오랜 시간 쌓인 스트레스와 불만, 성장에 대한 갈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며, 퇴사템은 그런 이별을 감정적으로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MZ세대가 바라보는 직장, 일, 그리고 퇴사
MZ세대는 밀레니얼(Millennial)과 Z세대(Generation Z)를 아우르는 세대를 말하며, 대략 1981년부터 2010년 초반까지 출생한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이들은 기술 친화적이고, 개인의 가치와 자율성을 중시하는 세대입니다. MZ세대의 등장은 기존의 직장문화에 커다란 균열을 가져왔습니다.
이전 세대는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인식이 강했던 반면, MZ세대는 ‘회사는 내가 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를 먼저 묻습니다. 그들에게 직장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 삶의 방향과 맞아떨어져야 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연봉만이 아니라 복지, 문화, 소통 방식, 성장 기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입사와 이직을 결정합니다.
이들은 조직이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곧장 퇴사를 선택합니다. 이직에 대한 두려움도 크지 않으며, 자신에게 맞지 않는 회사를 오래 다니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퇴사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게 만들었고, 퇴사를 마무리하는 방식 역시 개인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변했습니다.
퇴사템은 이러한 세대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퇴사를 단순히 ‘끝’이 아니라, ‘전환점’으로 보고, 이 과정을 공유하고 즐깁니다. MZ세대는 퇴사 소식을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 공개하고, ‘퇴사 브이로그’, ‘퇴사 후기’, ‘퇴사 준비물’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단순한 자기표현이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위로받기 위한 새로운 방식입니다.
또한 이들은 퇴사를 ‘자기결정권’의 하나로 여기며, 회사를 선택하고, 떠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 전체를 삶의 중요한 경험으로 간주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조직에게도 새로운 숙제를 안겨줍니다. 단순히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인재를 유지할 수 없으며, 진정성 있는 기업문화, 유연한 근무 환경, 열린 소통 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직원들은 퇴사를 통해 얼마든지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MZ세대는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 퇴사템은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퇴사템은 단순히 마지막 날 나누는 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마음과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적 상징입니다. 한국 직장문화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무조건 버티고 참아야 하는 곳’이 아닙니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이 일하고 싶은 조직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그 관계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퇴사템은 그 과정에서 탄생한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장치이며, 일의 마지막을 유쾌하고 긍정적으로 바꾸는 상징적인 도구입니다. 나아가 직장 내 관계를 정리하고, 후배나 동료와의 좋은 기억을 남기며, 스스로의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는 건강한 방법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앞으로도 퇴사템은 더 많은 직장인들의 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갈 것이며, 한국 직장문화도 이와 함께 계속 변화할 것입니다. 더 이상 ‘퇴사’는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단어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그 전환점의 중심에는 바로 ‘퇴사템’이라는 소박하지만 깊은 의미를 가진 문화가 있습니다.